https://youtu.be/DEBIiKV8L_s?si=UXj1N7Zih83pNVQ0
당신이 긴 잠에서 깨어나 익숙하거나 어쩌면. 그렇지 못한 천장을 마주한다는 도입은 이제 지겹다. 꿈을 꿀 때에는 그것의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듯 떠올려보면 우리 두 사람의 모든 이야기는 아마 시작을 알 수가 없는 것 같아. 언제나 이야기의 중간에서부터 깨어났다는 착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니까. 사실 우리 사이에 시간이란 것은 흘러가지 않는 거다. 모든 것은 맞춰진 짜임새가 있고 그 정해진 결말을 따라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라. 되감아 정작 우리들은 추억하지도 못하는 것 따위들을 억척스럽게 기워붙여 재생하는 단말일 뿐이니.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허무가 아닌 흔한 사랑이고. 또 그런 시작이다. 중간부터. 진부하고 새로운 이야기.
“이 후유코가 맡은 역할은.”
당신이 딱딱하게 몸을 뉘인 곳에서 움직이나 미동하지 않는다. 그 벨트는 신축성이 좋았던 제품이었겠지만 지금은 헐거워져 늘어나지 않고 단단히 몸을 조이고 있을 터다. 수술대 위의 표본을 무감한 눈빛으로 내려다 보는 나와 당신의 눈이 마주친다. 당신은 항상 이때 즈음 상황을 파악하고 겁을 내는 초식동물 같은 눈을 하는데.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것도 야속한 일이다. 어딘가에서 버거운 무게감이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마치 모르모트를 이용한 다음 숨 끊어 죽일 때와 같다. 분명히 사랑하는데도 이상하다고는 느끼나 여전하다.
“우다 타카모리와 이오리 후유코 사이의 가능성을 잇는 거야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당신이 알기 쉽도록 두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서로 닿게 한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만들어낸 동화 속 운명의 빨간 실을 서로 잇는 것처럼. 이오리 후유코가 우다 타카모리를 사랑한다는 전제는 이 우주의 커다란 결함이기 때문에. 상냥한 당신은 누군가가 감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만으로 그것이 배제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오리 후유코는 그깟 ‘사랑’으로 하여금 다양한 당신을 운명인양 귀속시켰기 때문에. 한결같이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학생의 신분으로. 또 언젠가는 시간을 누린 사람인척 성장한 모습으로. 가끔은 마녀가 된다거나. 싫증이 날 때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봐달라고. 그저 포기 할 줄 모르는 욕심 많은 괴물이 자신의 탄생을 의미하고 싶다며 멸망을 부르는.
“후유코가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 알지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어이, 후유코.”
“우리들은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그러니 가능성을 이어야 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일 하지 않아도 언젠간 만날 수 있어. 꼭 그렇게 믿는 것 같은 얼굴로 실제로 그런 안일한 소리를 하지만 이오리 후유코들은 어떤 우주에서도 자연적으로 우다 타카모리를 만날 수 없음을 알았다. 몇 번의 시도를 했는지도 몰라. 모르겠고.당신의 삶에 침투하지 않으면. 함부로 침입하고 참견하고 다가가지 않아서야 절대로 안 되는 인연이라고 깨달았다. 더 반복하기만 해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현해야 했다. 차분한 손길로 들어올린 메스를 이용해 흔들거리는 복부 위를 가르고자 움직여 날카로운 날 부분을 살갗 위로 짓누른다.
“이게 잘못된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검증해야해.”
당신의 마음이 있을 근원지를 찾기 위해 내장 사이를 헤집고 위장을 주무르다 갈비뼈를 뒤집는다. 이 신체 어딘가에 우리들의 ‘사랑’을 심어둘 수 있다면 당신과 나의 운명을 자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다.
“버려야 할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해.”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발작을 일으키지만 느린 손길로 이마를 쓸었다. 힘겹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후유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어. 하지만 반대로 후유코가 계속해서 노력하면. 계속해서 만날 수 있어.
“나는. 우리는. 우리들은. 후유코는…”
노력하면 만날 수 있어.
애쓰면 이뤄질 거야.
보상을 받을 거야.
어쩌면
제거.
제거.
제거.
제거.
제거.
위험물을 폐기한다.